여유로운 부산 길걷기 230902 -남구편
"여유로운 길걷기"는 전통 동문들이 2020년부터 해오던 걷기모임입니다. 그동안 매주 또는 격주로 부산의 여러 산들과 갈맷길을 다녔습니다.
9월의 첫 길걷기는 오륙도에서 부산진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본래 김대장은 갈맷길3-1 원코스를 제안했으나, 남구 주민인 내 제안으로 이기대 일주로-이기대입구-유엔묘지-우암동소막골-부산진시장의 코스를 잡았습니다.
오륙도가 내려다 보이는 로터리에서 출발합니다. 오륙도는 5개의 섬으로 돼있지만 물이 차면 6개로 보입니다. 위 사진에서는 두 개 정도만 식별됩니다만, 제일 앞에서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 일렬로 서 있습니다. 옆에서 보면 5, 6도입니다. 방패섬과 솔섬이 붙거나 떨어집니다.
오륙도SK뷰 아파트를 통과해서 샛길로 해군의 "전투력복원센터 네이비힐"을 통해 이기대 일주도로로 들어섭니다. 네이비힐(나는 자꾸 "힐링센터"라고 이름을 잘못 떠올립니다^^)을 통과해서 올라갑니다. 여기로 가면 찻길을 일시라도 피하고, 센터 내부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잠시 즐길 수 있습니다. 해군이 이곳을 민간에 개방해줘서 많은 동네사람들이 산책길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네이비힐 구내도로. ©엄이사 사진
큰비가 온 뒤라 길에 나뭇잎이 많이 구릅니다. 일주도로에도 지름길이 있어서 잠시 숲길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기대 일주도로를 걸으면 우리나라 남해와 동해를 다 볼 수 있습니다. 날 좋으면 남쪽으로 대마도도 보이고, 동쪽으로 해운대가 보입니다. 오늘은 안개가 자욱해서 가까운 해운대쪽만 볼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마린시티 마천루, 동백섬, 엘시티, 달맞이고개가 안개속에서 불쑥불쑥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기대 입구 인근의 팥빙수 집에서 가볍게 한 그릇씩 먹고 가기로 합니다. 이기대 입구 인근에는 팥빙수 집이 두 개가 있습니다만, 용호시장 가는 골목 안의 이 집이 이 동네의 원조이고 더 맛있습니다.용호동에서 대연동으로 이어지는 뒷길로 해서 찻길과 동네를 지나 유엔묘지 후문으로 들어갑니다. 예전에는 후문이든 정문이든 멋있게 생긴 군인이 힘찬 경례로 손님을 맞았는데, 이번에는 경비원이 "어서 오십쇼~" 합니다. 주말이라 경비가 출입구 관리를 하고 평일에는 여전히 군인이 경비를 서는지, 아니면 아예 군인이 빠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평일에 한번 와봐야겠습니다. 군인이 경례로 맞을 때는 들어갈 때부터 경건한 마음이 들었지만, 경비원이 맞으니 좀 느슨한 마음이 됩니다.^^유엔묘지는 건축물이 몇 개 없는, 문자 그대로 묘지이지만, 건물들은 그 나름 참배자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정문은 김중업이라는 한국 근대 건축의 거장이 설계한 것이라고 합니다. 김중업은 부산과 인연이 많습니다. 한국전쟁 시기 1.4 후퇴 때 부산에 와서 서울대교수로 서울대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의 강의를 맡았습니다. 1959년에는 부산대 인문관(옛 본관)을 설계했습니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이 분은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잘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유엔묘지에서 나와 부산문화회관을 거쳐 회관 주차장 건너편 고개마루에 있는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요기를 합니다. 정자에서 위쪽을 올려다보면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보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 들르지는 않습니다. 이곳은 그 이름 그대로 강제동원의 역사에 관한 자료들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 역사관은 건물을 지을 때부터 예산 부족으로 시간이 많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 속의 전시물이 부족해서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늘 갖게 합니다. 이렇게 이곳은 짓기부터 운영까지 홀대를 받아왔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유엔묘지와 대조를 이룹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비교우위 사진
이제 석포고개를 넘어 우암동으로 들어섭니다. 1981년부터 2014년까지 이 지역을 지켰던 부산외국어대학교의 정문을 지나서 우암로를 만납니다.
부산외대 정문. ©김대장 사진
우암로 뒷길로 해서 소막마을로 들어갑니다. 소막마을은 일제가 우리땅의 소를 일본으로 실어내기 위해 검역과 보관 용도로 소막을 설치했던 마을입니다. 이곳을 적기(赤崎)라고도 합니다. 적기는 한자로 붉을 적, 곶 기로 표기하는데, 이 이름은 일제 때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유력한 것은 이곳의 땅이 붉은 색이고 이곳의 지형이 곶이어서 왜인들이 자기들 고향의 지명을 여기다 붙였다는 설입니다. 적기의 일본식 발음 아카사키는 일본의 지명에도 많고 사람의 성에도 많이 쓰입니다. 이 마을도 아파트 건축으로 위쪽은 거의 다 사라지고 동항성당 쪽과 아래의 우암로 쪽만 남았습니다.
이 동네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밀면입니다. 내호냉면, 이 집은 한국전쟁기인 1952년에 생겼습니다. 내호냉면의 뿌리는 1919년에 함흥에서 설립된 동춘면옥입니다. 북한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냉면이 먹고 싶은데, 메밀은 없고 미국 원조물자로 들어온 밀가루가 많으니 이것으로 냉면 비슷하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 밀면이라고 합니다. 이 밀면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업화한 곳이 바로 내호냉면이라고 합니다.
밀면으로 시장끼를 속이고 소막으로 가봅니다. 소막은 일제 때는 소 대기실로 사용됐고, 해방후에는 부산으로 밀려온 피란민들의 주거지로 사용됐습니다. 이곳에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고요, 구청측에서 복원을 해서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소막 1칸에 한 가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안에 들어가면 우물도 있고, 대나무와 흙으로 벽을 친 흔적도 있습니다.
이제 부산진시장까지 갑니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찻길이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부산진성 앞에서 버스를 내렸습니다. 부산진성은 약간 올라가야 하지만 자주 지나치면서도 들여다보기는 어렵기에 이번참에 꼭 올라가보자는데 다들 동의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우산을 들고 올라가 진남대 안에서 잠시 비를 피합니다. 진남대 뒤 마당 한켠에, 약간 뜬금없지만, 천장군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부산진성은 그 운명이 기구합니다. 1407년 태종 7년 때 조선정부는 왜인 감시 목적으로 군사를 주둔시키고 1490년에 지금의 증산공원 아래에 성을 쌓았습니다. 이를 '전기 부산진성'이라고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부산진첨사 정발 장군은 부산진성을 지키다 순국합니다. 왜군은 1593년 부산진성을 허물고 증산왜성을 쌓고 지금 우리가 올라온 곳에 '자성대 왜성'을 쌓았습니다. 오늘날 부산사람들이 이곳을 '자성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임진왜란 후 1607년에 조선정부는 자성대 왜성을 수리하여 후기 부산진성으로 삼았습니다. 부산진성터에 있는 '천장군기념비'는 1947년에 세워진 것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명나라에서 건너와 평양 울산 전투 등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고 나중에 조선에 귀화한 충장공 천만리를 기리는 비석입니다. 그래서 부산진성은 조선과 왜와 명나라의 기운이 얽히고 설킨 슬픈 역사를 안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23년 9월2일 길걷기 후기입니다. 어쩌다보니 이번 길걷기는 왜와 얽힌 부산 역사 탐방이기도 했습니다. 이기대는 이름부터 왜와 관련이 있고, 이기대 일대에는 왜인들이 일제때 파놓은 굴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유엔묘지는 왜가 남긴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고, 소막마을과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일제가 남긴 상흔을 보여줍니다. 부산진성은 왜를 물리치려는 조선의 분투를 몸으로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이처럼 오늘 길걷기는 한반도 주변 외세와 글로벌 외세와 한민족간의 쟁투의 역사를 축약해서 경험하는 걷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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