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우위 이야기 4 - 프랑스 와인에서 포르투갈 와인으로
영국은 서늘한 기후가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아 포도주를 해외에 의존했습니다. 주로 인접한 프랑스 포도주를 수입하여 소비했습니다. 영국인들의 프랑스 포도주 사랑은 12세기에 시작됐습니다. 1152년 헨리 2세 국왕이 엘레오노르 공작과 결혼하면서 공작의 영지였던 프랑스의 북부와 서부 지역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100년에 걸쳐 이 땅은 프랑스 왕국에 반환되었지만 보르도를 포함한 남서부지역은 여전히 영국 지배하에 남았습니다. 이 지역은 영국령이므로 여타 프랑스 지역과는 달리 포도주에 부과되는 관세가 면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보르도가 그 항구와 함께 영국의 포도주 수요를 충족시키는 완벽한 입지로 부상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보르도 포도주는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포도주는 값싸고 풍족해서 당시 영국의 저소득층에서도 널리 소비되었습니다. 보르도 포도주의 영국 소비는 14세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백년전쟁(1337~1453)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보르도의 특별한 지위는 백년전쟁 후 영국이 프랑스 영지를 완전히 상실함으로써 사라졌습니다.
16세기 초 포도주는 이제 서민들에게는 비싸서 접근할 수 없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법령을 공표하여 프랑스 산 포도주 및 그리스와 스페인 산 포도주에 대해 가격 상한을 설정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오랫동안 숙적 관계였던 프랑스에 포도주를 의존하는 상황을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17세기 말, 9년 전쟁(또는 대동맹전쟁. 1688~1697)과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1701~1714)을 거치면서 영국은 프랑스 산 수입을 억제하고 포르투갈 산 수입을 장려하는 관세체계를 도입했습니다. 이 체계의 일부가 앞에서 언급한 1703년의 영국-포르투갈 조약입니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의 사업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시장이 불안정해졌고 영국은 포르투갈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1713년 영국 의회는 프랑스와의 조약에서 대부분의 최혜국 조항을 삭제한 반면, 포르투갈과의 메수엔 조약은 유지했습니다. 이 조약은 포르투갈의 포도주와 영국의 모직물의 교환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프랑스의 수출업자는 포도주 수출에 더 많은 관세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영국의 관세는 종량 기준으로 부과되어 최저가 포도주에 대해서조차 인상되었습니다. 그 결과 18세기 대부분과 19세기 초의 시기에 영국에서 저가 포도주 시장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당시에 영국은 프랑스 포도주의 최대 수입국이었습니다. 내국세의 도입으로 영국에서의 프랑스 포도주 수요가 크게 감소했습니다. 관세로 인한 수요의 위축은 프랑스 주조업계, 특히 보르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자국산 맥주를 값싼 프랑스 와인과 경쟁하도록 하기 위해 내국세를 조정했습니다. 그 결과 저가 프랑스 포도주는 수입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여 프랑스의 주조업계는 고급 고가의 포도주를 생산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새로운 주조법을 채택하여 보관기간을 연장하고 고품질의 포도주를 생산합니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관세는 프랑스 포도주의 영국 수출을 줄이고자 했지만, 프랑스에서 고급 포도주를 생산하는 방법을 채택하게 만들었습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프랑스는 세계에서 최고급 포도주를 생산하는 국가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영국은 오랫동안 그 경제적 경쟁자인 프랑스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자 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포르투갈에 대해서는 관세와 보조금으로 포도와 포도주 생산을 지원했습니다. 영국은 포도주 전문가를 파견하여 포르투갈의 포도 생산자들에게 프랑스 산에 필적하는 최고급 포도주의 제조법을 가르쳤습니다. 영국 정부의 노력과는 별도로 영국의 귀족들은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고급 포도주를 소비할 수 있었고 이들의 소비로 프랑스 포도주 산업은 여전히 유지되었습니다. 서민들은 더 이상 프랑스 포도주를 소비할 수 없었고 그 대신에 국내산 맥주와 증류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요컨대 프랑스는 여전히 고급 포도주 생산에서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고 영국의 귀족들에게 그것을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가 포도주는 높은 관세로 인해 영국 시장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1860년에 콥든-슈발리에 협정(영불 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정상 무역이 허용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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