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우위 이야기 3 - 왜 포르투갈인가

리카도의 원형 모델 자체가 갖고 있는 쟁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리카도가 왜 하필이면 영국의 모직물과 포르투갈의 포도주를 예로 들었는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대부분의 무역이론 교과서에서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궁금합니다.  

사실 영국의 모직물과 포르투갈의 포도주 교환은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리카도의 그런 예 들기가 익숙한 것이었을 겁니다. 

1373년에 영국과 포르투갈은 영국-포르투갈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때부터 두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두 나라는 유럽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해양 국가로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우호 관계는 그 이전에 이미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1147년에 포르투갈 왕국의 아폰수 1세가 리스본을 점령할 때 영국 기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에 왕은 리스본 주교로 영국인을 임명하는 것으로 보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폰수1세. 위키피디아

양국 관계는 1580년 포르투갈이 왕위 계승에 실패하고 스페인과 이베리아 연합으로 통합한 뒤 잠시 소원해졌습니다. 그러나 1640년부터 1668년까지 지속된 포르투갈 왕정복고전쟁에서 영국이 포르투갈을 지원하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1703년 포르투갈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5)에서 영국-네덜란드 동맹에 참여했고 같은 해 두 나라는 메수엔 조약(Methuen Treaty)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18세기 중반 포르투갈은 세계대전 급의 전쟁인 7년전쟁(1756~1763)에서 프로이센-하노버-영국의 연합에 참여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포르투갈은 큰 이득을 얻지는 못했지만, 스페인의 침공을 막아냈습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1803~1815) 시에 포르투갈은 끝까지 영국 편에 서서 대륙봉쇄령에 저항하여 영국과 무역을 지속했습니다. 이에 나폴레옹이 1807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침략했고 포르투갈 왕가는 영국 해군의 보호 아래 브라질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리카도가 『원리』를 쓰던 당시 영국 포르투갈 관계의 요약입니다. 리카도의 비교우위이론과 관련해서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메수엔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영국 모직물과 포르투갈 포도주의 자유 무역을 허용하는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포르투갈 국왕은 영국의 모직물과 기타 모직 제품을 영원히 포르투갈에 수입하는 것을 허락하며, 영국 국왕은 프랑스 포도주에 비해 1/3이 감액된 관세로 포르투갈의 포도주를 영원히 수입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약 이후 영국의 모직물은 물론이고 여타 공산품도 활발하게 포르투갈에 수출되었습니다. 거꾸로 포르투갈의 포도주도 영국에 대량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이 두 품목의 자유무역에서 영국은 큰 이득을 얻은 것 같습니다. 이 무역의 효과에 대해서는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1776)에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스미스는 "이 조약이 영국통상정책의 제일의 걸작이라는 격찬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무역에서 영국의 모직물 수출이 포르투갈의 포도주 수출을 앞질러서 무역 흑자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은 무역 적자를 메우기 위해 식민지인 브라질로부터 들여오는 금의 상당 부분을 영국에 지불했습니다. 포르투갈과의 무역에서 얻어지는 금은 영국이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스미스는 말합니다(애덤 스미스, 『국부론』, 4편 6장). 

영국은 프랑스 등 유럽의 농업 강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식량을 포함한 농산물 수입을 저지하기 위해 골몰해 왔습니다. 이 곡물 수입을 자유화하는 것은 1846년 곡물법(Corn Laws) 폐지 이후입니다. 리카도는 이 곡물법이 제정된 1815년부터 이 법을 폐지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이론적 기반을 만들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이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였습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 볼 때, 리카도가 자유무역의 이점을 말하기 위해 제시한 사례로서 영국의 모직물과 포르투갈의 포도주만큼 당대의 영국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좋은 것이 없었을 듯합니다. 영국-포르투갈의 모직물-포도주 무역은 영국 입장에서는 보기 드문 자유무역의 성공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애덤 스미스와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가 이미 이 무역에 대해 극찬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리카도로서는 이 권위자를 빽으로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